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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블로거기사/희망블로거 1기 기사

[국민이 설계하는 대학운동] 지도교수제는 왜 껍질만 남았을까?

지도교수제는 왜 껍질만 남았을까?


문준영 (희망블로거 1기) 





‘교수님이 신상정보만 간단히 묻고 5분만에 상담이 끝났다’

‘고민을 미리 작성해서 제출하라는데, 개인적으로 잘 알지도
못하는 교수님께 어떻게 갑자기 털어놓으라는 거냐’

‘학기마다 한 번씩 필수로 꼭 상담을 해야해서 어쩔수 없이 하는데
아무런 효과도 없다’
 

지도교수와의 상담을 마치고 나온 학생들이 내뱉은 말이다.
이들은 지도교수제에 대해 하나같이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형식적인 지도교수제

지도교수제는 교수가 해당학과 일정 수의 학생들을 맡아 학업과 진로에 대한 상담을 진행하는 프로그램이다. 이를 시행하는 대부분의 학교에서는 학생들에게 매학기 필수로 지도교수와 상담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학생들의 전반적인 만족도는 낮은 편이다. 실제로 <교수신문>이 2011년 5개의 대학신문과 연합과 함께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 중 38.7% 지도교수제가 형식적이라고 느낀다고 답했다. 36.3%의 학생들은 ‘보통’이라고 답했다. 

 현장에서 들어본 목소리는 위 조사결과보다 더 부정적이었다. 대학생들과의 인터뷰에서는 ‘그런게 있는지 없는지 모를 정도로 형식적이었다.’ ‘한 학기에 한 번 꼭 참여하도록 강제해서 어쩔 수 없이 하는데 효과가 없다’와 같은 답변이 나왔다. 특히 1:1 상담이 아니라 학생들을 열댓명씩 모아놓고 자신의 교육관을 설파하거나, 저녁을 한 번 사주는 것으로 마무리짓는 경우도 있었다. 도움을 얻은 경우는 소수에 그쳤으며 그 역시 ‘기존에 교류가 있었던 교수님들로부터 얻은 효과’라고 밝혔다.

사실 대학들이 지도교수제를 도입하고, 졸업의 필수 요건으로 몇 차례 이상의 상담을 제도적으로 강제하는 것은 최근의 일이다.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전체 교수에게 학생상담 제도가 도입된 것은 1996년의 광주대학교이지만, 활성화 된 것은 2000년대 이후이다. 취업난이 본격화 된 이후 각 대학들은 이에 대한 일종의 대비책으로서 여러 가지 취업 지원제도를 마련했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학생과 교수와의 상담을 필수화하는 형식의 지도교수제이다. 즉 보통 영미문화권의 석사 이상의 지도교수제와는 다른 개념으로서 시작되었다. 학문적 멘토링 방식이 아닌 취업률을 높이기 위한 방편으로 시작된 것이 한국의 지도교수제라고 볼 수 있다.


멘토가 되지 못하는 교수들

문제는 과연 교수들이 취업과 진로 지도에 적합한 멘토인가 하는 점이다. 사실 교수들은 대학사회 외부의 변화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한 국립대의 사범대에 재학중인 학생은 “학과 교수들은 임고(임용고사)의 기본 전형도 하나도 모르고 있다”며  “심지어 자기 전공분야도 어떤 유형으로 시험에 나오는지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불만을 토로했다. 

취업컨설턴트로 유명한 신정수 교수는 “대부분의 교수들은 요즘 기업의 변화나 취업과 관련된 정보에 있어서 정보가 전무하다”면서 “그들은 자기 분야에 있어서도 최신의 경향이 무엇인지, 학생들 취직 할 때 기업이 어떤 것을 보는지 알지 못한다”고 비판을 가한 바 있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을 교수들의 탓으로만 돌리는 태도는 바람직하지 못하다. 교수들은 논문과 강의, 관련 분야와 관련된 세미나 등의 일정에 발목이 잡혀있다. 자기 영역에 있어서 지엽적인 경쟁을 계속하다보니 거시적인 시각에서 외부사회를 파악하거나 최신 트랜드를 따라가지 못하는 것이다. 직위를 유지하기 위해 살인적인 경쟁이 요구되는 상황에서 취업과 관련된 상담까지 일임하는 것은 그들에게 큰 부담이다. 특히 전공을 살려 취직하는 것이 힘들어진 최근의 흐름에서는 지도교수제의 효과를 기대하기 힘들다.


대학의 문제를 넘어서, 구조의 문제로

지도교수제의 결함이 궁극적으로 말해주는 것은 대학들도 취업난으로 인해 고통 받고 있는 현실이다. 취업률은 학교 홍보나 재학생 유치뿐만 아니라 정부에서 대학의 건전성을 평가하는 지표이기도 하다. 때문에 어떻게든 취업률을 올려야 하며, 따라서 취업 지원 제도를 하나라도 더 확장하려고 애쓰고 있는 것이 대학의 현실이다. 이 과정에서 구체적인 논의는 부족했으며, 결국 지도교수제와 같은 보여주기식 행정이 등장했다. 

또 다른 문제는 개별 대학들의 분리된 노력만으로는 이 모든 상황의 핵심인 ‘취업난’이 해결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열심히 하면 할 사람은 다 돼’라는 식의 수사법으로 모든 문제를 개인의 의지로 돌리는 것이 부적절하듯, 지도교수제의 형식화에 대해 단순히 대학 행정을 탓하는 것 역시 위험한 일이다. 기존 구조에 대한 변화 없이는 어떤 대학의 노력도 결국 미봉책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는 이 모든 상황을 둘러싼 ‘구조’에 대해서 이야기 할 수 밖에 없다. 

즉 취업난에 대한 대응은 단순히 학생 개개인이 스펙을 높이거나, 각각의 대학들이 취업 지원 제도에만 몰두하는 것이 아닌 사회 구조상의 결함을 보충하는 데에서 비롯되어야 한다. 취업난에 대한 논의가 단순히 개인의 의지나 대학 차원이 아닌 한국 사회를 둘러싼 거대 담론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