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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블로거기사/희망블로거 1기 기사

[국민이설계하는대학운동] 대학체제 개편의 필요성(3) : 부실한 대학교육 - 양보다 질!

대학체제 개편의 필요성(3)

부실한 대학교육 - 양보다 질!


한정훈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정책대안연구소 연구원)





알맞은 해법


지난 겨울 사무실이 건조해서 행운목 여섯 그루를 사무실에 들여놨습니다. 옹기뚜껑에 물을 채우고, 햇볕이 잘 드는 창가에 두었습니다. 그런데 잘 자라지 않고, 잎사귀 노랗게 바랬습니다. 물도 넉넉히 줘보고, 이리저리 자리도 바꿔봤는데 끝내 원인을 찾지 못했고, 바라던 가습효과는 겨우내 신통치 못했습니다. 결국 기대를 접고 버리다시피 잊고 지냈습니다.



그러다 봄을 맞이하면서 사무실 환경을 정리할 일이 생겼는데, 사무실 식구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행운목 아래에 자그마한 돌멩이를 깔아줘서 숨 쉴 공간을 마련해야 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한 선생님께서 그 말을 듣고, 다음날 집에서 돌멩이를 가져와 오밀조밀하게 채워주셨습니다. 덕분에 지금은 시들하던 행운목에 연두색 잎사귀가 기분 좋게 올라옵니다.





우리나라는 성장에 성장을 거듭하며 선진국의 문턱까지 숨 가쁘게 달려왔습니다. 그러다 요사이 잠시 주춤하고 있습니다. 이를 두고 경제 용어로 ‘중진국의 함정’ 또는 ‘2만 불의 함정’이라 부릅니다. 우리나라와 같이 선진국을 향해 달리던 많은 나라들 중에 이 딜레마를 극복하지 못하고 장기간 정체하거나 심지어는 크게 후퇴하는 나라도 있습니다. 그러나 식물을 봐도 그렇고, 모든 문제에는 알맞은 해법이 있습니다. 우리에게 새로운 성장동력이 필요합니다.



질보다 양?



그 동안 우리나라는 노동과 설비를 늘려 주된 성장동력으로 삼았습니다. 그런데 이런 요소투입량은 한계가 있고, 결국 성장도 한계에 다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많은 전문가들이 중진국의 함정을 벗어나기 위한 알맞은 해법,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하나같이 손꼽는 게 바로 ‘고등교육경쟁력’입니다. 여기서 고등교육경쟁력이란 “국가경쟁력의 중요한 요소로서 사회가 요구하는 고급 인적자원을 양성하고, 사회 발전에 기여하는 지식정보를 연구·생산해내는 능력”을 말합니다. 다시 말해 양이 아니라 질입니다.



이미 경제가 성숙한 나라에서는 대학 취학률이나 졸업생 수가 경제성장에 유효하지 않습니다. 대학 졸업자 수가 심각하게 부족하지 않는 이상 노동시장에 대학 졸업자를 많이 투입한다고 경제가 성장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대학은 1990년대 중반 이후 ‘대학설립준칙주의’를 도입하면서 질보다 양을 선택했습니다. 그 결과 대학 및 학과의 수가 많이 늘었고, 고등교육 취학률(2004년 WEF 3위)과 이수율(2004년 IMD 5위) 역시 상당한 수준으로 높아졌습니다.[각주:1] 다음은 대학설립준칙주의가 대학 및 학과의 증가에 끼친 영향을 확인할 수 있는 표입니다.





언뜻 보면 크게 문제 삼을 게 없어 보입니다. 아니, ‘좋은 일 아닌가? 대단한 일 아닌가?’ 이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튼실하게 성장한 게 아니라 갑작스런 비만으로 봐야 맞습니다. 덩치가 커진다고 다 건강한 게 아닌 것처럼 말입니다. 이는 공급자 중심의 ‘일류대학 따라 하기’ 식의 획일적인 대량생산일 뿐입니다. 개별대학의 차별화된 역량을 가로막는 대학 부실의 주범이 바로 이 급격한 양적 성장입니다.



양을 선택한 결과



첫째, 고등교육경쟁력이 낮습니다. WEF의 2009년 발표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국가경쟁력은 19위이고, 2010년 IMD는 23위로 발표했습니다. 그러나 국가경쟁력의 선전에 비해 지난 수년간 우리나라의 고등교육경쟁력은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습니다. 국가경쟁력을 고려할 때 충격적인 수치가 아닐 수 없습니다.




둘째, 진정한 연구중심대학이 없습니다. 우리나라는 석/박사 대학의 비중이 전체 대학의 75%나 됨에도 불구하고 진정한 연구중심 대학이라 부를 대학은 없습니다(2006년 기준 미국은 61%, 일본은 49%). 왜냐하면 연구중심 대학을 표방하는 대학들조차 대학원생 비율이 낮기 때문입니다. 이는 백화점식 종합대학으로 덩치는 키웠지만 차별화된 역량 개발에 실패한 예라 할 수 있습니다.





셋째, 교육여건이 열악합니다. [표4]는 우리나라 고등교육기관 진학률 현황이고, [표5]는 대학교원 1인당 학생 수 현황입니다.







[표5]를 보면 대학교원 1인당 학생수가 OECD 평균의 2.2배나 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고등학교 졸업자 10명 중에 8명이 대학에 진학하지만 교수는 부족합니다. 그래서 시간강사가 수업시수의 36%나 맡고 있는 실정입니다. 쭉 살펴본 결과, 고등교육 성취를 말해주는 양적인 지표들은 급격히 늘었지만 그에 걸 맞는 질적인 성숙과 적절한 교육 여건이 뒷받침되지 못하는 걸 확인할 수 있습니다.



양보다 질!



우리나라는 양적인 지표만 놓고 보면 선진국과 견주어도 뒤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국가경쟁력의 지속적인 성장을 가능하게 하는 결정적 요소는 양보다 질, 바로 고등교육의 품질(quality)과 대학의 역량(capacity)입니다. 이를 위해서 다양한 개인과 사회 요구에 부합하는 대학교육이 마련되고, 개별 대학이 자신의 특성에 맞는 차별화된 역량을 키워야 하며, 교원을 확충하고 재정을 투입하는 등의 지원이 뒷받침 돼야 합니다. 여기에 국가의 역할이 있습니다.  대학의 질적 성장을 도모하는 장기적인 계획 수립과 운영, 그리고 인적 자원과 재정 투자에 힘을 쏟아야 합니다.



고등교육 질을 개선하는 일은 모두가 힘을 모아야 할 일이지 어느 한 영역이 떠맡을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모두의 책임’은 ‘모두의 무책임’으로 왜곡될 수 있기에 무엇보다 대학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대학은 스스로 양적 성장을 제한해야 합니다. 그리고 국가와 사회에 대한 책임의식을 바탕으로 새롭게 정체성을 빚어야 합니다. 알맞은 해법을 찾아 실천하지 못한다면 비록 원치 않았을지라도 국가발전의 걸림돌이 될 수 있습니다. (우수)학생을 확보하려는 과도한 선발 경쟁 체제에서 양질의 교육을 제공하려는 교육 경쟁 체제로 전환이 절실합니다.





 

  1. WEF는 매년 스위스의 다보스에서 개최되는 ‘세계경제포럼’(World Economic Forum) 연차총회를 말하고, 흔히 다보스포럼(Davos Forum)이라 부릅니다. IMD는 스위스 로잔에 있는 ‘국제경영개발대학원’(International Institute for Management Development)으로 지난 1980년부터 해마다 세계 각국의 국가 경쟁력을 종합 평가, 순위를 매기고 있습니다. <자료: 네이버>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