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희망블로거기사/희망블로거 1기 기사

[국민이 설계하는 대학운동] 대학체제 개편의 필요성(2) : 거품 낀 대학서열

대학체제 개편의 필요성(2)
거품 낀 대학서열

한정훈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정책대안연구소 연구원)



벌거숭이 임금님
 
안데르센 단편 중에 1837년에 나온 <벌거숭이 임금님>이란 작품이 있습니다. 거울 보는 걸 좋아하고, 옷장에 쟁여둔 수많은 옷을 꺼내서 입어보는 맛에 사는 나르시시즘의 궁극에 서 있는 한 왕이 있었죠. 어느 날 왕궁 밖에 두 명의 재봉사가 찾아와 기막힌 옷감이 있다고 홍보하자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어 시끌벅적 했습니다. 귀가 솔깃해진 왕은 기막힌 옷감이라는 말에 혹해 재봉사를 궁으로 들였습니다.

왕은 두 명의 재봉사에게 기막힌 옷감으로 옷을 만들어 달라고 제안했습니다. 재봉사들은 흔쾌히 승낙했습니다. 그런데 한 말을 덧붙이죠. 기막힌 옷감은 착한 사람 눈에만 보인다는 말이었습니다. 터무니없지만 이미 허영심에 사로잡힌 왕은 귓등으로 들었습니다. 얼마 지난 후 기막힌 옷감으로 만든 옷이 완성됐습니다.

<출처> 위키백과, <벌거숭이 임금님 삽화> 빌헬름 페데르 작, 1849년



마침내 기막힌 옷을 자랑하고 싶은 왕은 사람들과 함께 거리로 나갔습니다. 벌거벗은 채로 말이죠. 왕의 무리가 행진하는 동안 사람들 눈이 휘둥그레졌습니다. 기막힌 옷을 입고 나온다더니 기가 막히는 꼴로 나왔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누구도 함부로 입을 열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때 ‘한 아이’가 소리쳤습니다. “임금님이 벌거벗었다!” (어떤 동화책을 보니까 그래도 왕은 고개를 더 빳빳이 들고 궁으로 돌아갔다고 하더군요. 원, 사람하고는...)


거품 낀 대학서열
 
대학체제 개편을 말하는 자리에서 웬 벌거숭이 임금님 타령이냐 하시겠지만, 이 이야기만큼 우리사회의 학벌서열을 잘 꼬집는 말이 없습니다. 지방대 학생들이 가지고 있는 출처가 불분명한 ‘Made in ○○○ 패배감’은 학벌서열체제에 그 뿌리가 있습니다. 자신이 다니는 대학, 자신이 받고 있는 교육이 실제로 어떤 수준인지 가늠하지 못하고 주눅 들어있습니다. 반대로 이른바 상위권 대학에 다니는 학생들은 별 거 없는데도 어디서나 떳떳합니다.

왜 같은 대학생인데 누구는 자신감으로 충만하고, 누구는 패배감으로 무장했는지 어디 물어 볼 때가 없습니다. 한국사회에는 학벌서열체제가 벌거벗은 임금님이라는 ‘진실이 말하는 공간’이 필요합니다. 그 동안 몇 차례 이런 공간을 만들려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지난 2010년 3월 10일 학벌서열체제를 맹신하던 한국사회에 김예슬씨가 큰 울림을 줬습니다. 대학/입시 거부로 세상을 바꾸겠다는 투명가방끈들의 모임도 있구요. 이런 의지와 저항이 학벌서열에 찬물을 끼얹습니다.

<출처> 네이버<출처> http://cafe.daum.net/wrongedu1


그러나 아직도 부족합니다. 한두 번 망신을 당했어도 거울 보던 취미도 그대로고, 나르시시즘도 여전합니다. 학벌서열체제의 수혜자인 상위권대학들은 찾아가지 않아도 찾아오는 서비스를 받고 있기 때문에 스스로를 성찰할 기회를 잃어버렸습니다. 여전한 ‘이름값’으로 한국의 젊은이들을 옥죄고 있는 게 현실입니다. 엄친아의 피해자는 엄친아 뿐만이 아닙니다. 어찌 보면 최대의 피해자는 엄친아일지도.

‘지속가능사회를 위한 경제연구소’(ERISS)가 2010년 9월 경향신문을 통해 발표한 대학지속가능지수 평가가 있습니다. ‘학생생활만족지표’를 상위 30개 대학에 다니는 1만 5000여명 대상으로 조사했습니다. 어렴풋하게나마 이 조사결과를 보면 진실이 보입니다. 흔히 ‘상위권 대학=좋은 대학’이라는 공식을 믿고 있는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는 증거들이 보이기 때문입니다. 전부 22개의 질문을 가지고 조사했는데 몇몇 조사결과를 보면 지방소재 대학의 발전이 두드러지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영역별로 상위 30위 대학에 여러 지방대학 이름이 눈에 띕니다.
 

[표1] 경향신문 학생생활만족지표 교수-학습 관련 항목 만족도 순위 및 만족도평균

[표1] 경향신문 학생생활만족지표 교수-학습 관련 항목 만족도 순위 및 만족도평균교육여건이 우수한 30개 학교 재학생 500명씩 전체 1만5천명을 대상으로 만족도 조사를 실시하였으며, 구체적인 질문의 내용은 △강의준비 : ‘우리학교 교수들은 강의준비를 철저히 한다’, △전공지식 : ‘우리학교는 전공지식을 쌓는데 도움을 준다’, △지적자극 : ‘대체로 우리학교 수업은 흥미롭고 지적 호기심을 자극한다’, △참여유도 : ‘교수가 수업 중 학생들의 활발한 참여(질문․토의 등)를 유도한다’ 등으로 구성


반대로 상위권대학의 이름값에 걸맞지 않는 실망스런 결과들도 눈에 띕니다. 수도권, 연구 중심, 대규모 대학들이 우수할 거라는 통념은 빗나갔고, 오히려  ‘대규모 연구중심 사립대학’은 이름값을 못할 때가 많습니다. 대학교육의 만족도와 대학서열은 일치하지 않는 게 분명합니다.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수도권 대학보다 대학교육의 질이 우수한 지방대들이 있고, 상위권 대학이라고 반드시 교육의 질이 높은 건 아니라는 거죠.

교육여건도 마찬가집니다. 2010년 대학알리미 자료에 의하면 재학생수를 기준으로 우리나라 대학 전임교원 1인당 학생수는 29.1명이었습니다(교육대학은 제외되었으며, 대학과 대학원생을 합쳐서 계산한 것. 참고로 35명이 넘으면 초중고보다도 교육여건이 뒤떨어진다는 의미입니다). 이 자료를 보면 상위권 대학들도 교육여건이 열악하다는 게 여실히 드러납니다. 다시 말해 ‘인(in) 서울 풍조’에 거품이 꼈다는 겁니다. 학벌서열체제 벌거숭이 임금님 맞습니다.
 

[표2] 계열별 전임교원 1인당 학생수 현황



진실이 말하는 공간 만들기
 
꾸준하게 “학벌서열이 벌거벗었다!”라고 진실이 말하는 공간을 만드는 게 중요합니다. 두 가지 대안이 있을 수 있죠.

먼저, 대학교육의 질을 공정하게 평가하는 지표가 마련되고, 공신력 있게 자리 잡는 일이 선행돼야 합니다. 통계에는 언제나 꼼수가 도사리고 있기 때문에 평가 자체가 더 발전해야 합니다. 숫자로 셈할 수 있는 지표로만은 충분하지 않죠. 획일적인 지표도 마찬가지구요. 각 대학의 특성이 더 반영된 다양한 평가들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학생들의 생생한 목소리가 담긴 정보들이 평가에 반영돼야 합니다. 각 대학의 실제 형편은 당사자가 가장 잘 아는 법이니까요.


둘째,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통념에 갇히지 않은 정말 좋은 대학을 찾는 일입니다. 상위권 대학이 스스로 나르시시즘에서 헤어 나오는 일을 막연하게 기다리면 안 됩니다. 내내 기다리다 끝납니다. 허위의식에 갇히지 않은 대학, 잘 가르쳐서 뛰어난 교육성과를 내는 좋은 대학들을 찾아 널리널리 알려야 합니다. ‘희망 블로거’님들과 함께 하고 싶은 일 중에 하나이기도 하죠. 2008년 출간한 <내 인생을 바꾸는 대학> 부제는 ‘작고 강한 미국 대학 40’ 이런 책이 있더군요. 이런 운동이 한국에서도 일어나기를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