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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블로거기사/희망블로거 1기 기사

[국민이 설계하는 대학운동] 볼로냐 프로세스, 유럽을 소용돌이에 빠뜨리다

볼로냐 프로세스,

유럽을 소용돌이에 빠뜨리다

문준영 / 희망블로거 1기



우리 나라의 대학생이 다른 나라의 대학으로 교류 수학을 떠나는 일은 이제는 생소한 일이 아니다. 이런 학생 교류 프로그램은 한국 뿐 아니라 유럽과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의 많은 대학들이 참여하고 있는 교류 제도이다. 하지만 현재 유럽에서는 이와는 조금 다른 형식의 대학간 교류가 일어나고 있다. 바로 ‘볼로냐 프로세스’라는 대학 제도 표준화 프로젝트이다.
 
유럽 전역의 사회경제적 통합이라는 대목표를 꿈꿔온 유럽연합이 교육분야에도 손을 뻗은 것이다. 볼로냐 프로세스는 이 맥락에서 탄생한 ‘고등교육 통합 프로젝트’라고 할 수 있다. 쉽게 말해, 제도의 표준화를 통해 전 유럽의 대학교육 제도를 통일하는 것이다.


볼로냐 프로세스의 목적


볼로냐 프로세스는 1999년,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등 4개 유럽연합(EU) 소속 국가들이 이탈리아 볼로냐에서 모여 2010년까지 단일한 대학 제도를 설립하여 유럽 대학들의 국제 경쟁력을 높이자며 만든 프로그램이다. EU에 속하지 않은 국가들도 참여해 회원 수가 47개국으로 늘었다.  

볼로냐 프로세스를 통해 유럽 지역 내에서는 타 국가에서도 인정받는 학위를 얻게 된다. 예를 들어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대학을 졸업한 것과 영국의 케임브리지에서 졸업한 것이 스페이든, 영국이든, 이탈리아든, 독일이든 똑같은 대학 졸업 자격으로 인정받는 것이다. 

볼로냐 프로세스를 위해 몇 가지 커다란 구조적 변화가 수반되었다. 각국마다 조금씩 다른 대학 제도를 표준화시켰다. 학사 3년, 석사학위 2년의 방식으로 통일시킨 것이다. 또한, 학점교류시스템과 같은 표준학점제도를 도입했다. 이와 더불어 대학 교육의 품질을 보증하기 위해 '국가인증제도'를 도입시켰다. 국가차원에서 대학들의 교육 수준을 관리하여, 어느 정도 수준 이상으로 평가받아야 볼로냐 프로세스에서 인정받을 수 있다. 

그렇다면 이 거대한 프로젝트는 왜 시작된 것일까? 이를 추진하는 유럽국제교육협회(EAIE)는 미국 대학으로의 인재유출과 경쟁력 강화를 이유로 내새운다. 유럽의 대학 경쟁력은 약화 되고 있으며 학생뿐만 아니라 석학이나 교수들도 미국으로 유출되고 있다는 데에 공포감이 작용한 것이다. 고등교육에 대규모로 투자하는 미국식 대학 운영과 달리, 유럽 대학들은 여전히 고등교육의 기회균등 보장의 태도를 전제로 한다. 때문에 엘리트들은 점차 미국의 대학으로 빠져나갔다는 것이다. 

볼로냐 프로젝트를 이를 훌륭하게 보완해 낼 수 있을 거라는 것이 이를 추진하는 측의 입장이다. 유럽국제교육협회(EAIE)의 회장이었던 피오나 헌터의 말을 들어 보자.

“볼로냐 프로세스는 유럽의 노동시장과 대학교육 시장을 통합하는 것이다. 세계화 물결로 하나로 묶이는 유럽 노동시장에 대비하기 위해 대학들이 동질한 수준의 교육을 제공해야 할 필요가 생긴 것이다. EU 차원의 유럽 통합 중 유일하게 빠진 것이 대학교육 부문이다. 앞으로 유럽 대학이 통합되면 유럽 대학 전체의 경쟁력이 높아진다. 기업들 역시 국경을 넘어 유럽 전 지역에서 인재를 골라 쓸 수 있게 된다.”


정리하자면 볼로냐 프로세스는 ‘통합과 표준화를 통해 유럽 전체가 하나의 교육제도를 공유하여 경쟁력을 높이려는 시도’인 셈이다. 


‘또 다른 신자유주의이다!’
 
 
하지만 반대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실제로 2009년 빈과 베오그라드를 비롯한 유럽 각지에서 수만명의 대학생들이 참가한 시위가 벌어졌다. 이 시위는 유럽 각국이 펼치고 있는 신자유주의식 교육 개혁에 대한 반발이었는데 이 개혁 중 하나인 볼로냐 프로세스도 도마 위에 올랐다. 

실제로 볼로냐 프로세스는 교육을 하나의 산업으로 평가하는 측면이 있다. 이들 본부는 오스트리아와 같은 국가의 대학들이 유학생 유치를 통해 버는 수입이 급상승했다는 점을 극찬한다. 이미 교육을 하나의 상품으로 보고 있다는 것이다. 볼로냐 프로세스가 성공적으로 평가하는 대학들은 이 처럼 국가차원의 재정 지원을 줄이는 동시에, 유학생 숫자를 늘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반대론자는 이러한 흐름을 ‘신자유주의 연장선’이라고 평한다. 동시에 볼로냐 프로세스가 영미식 교육시스템으로 전환시킨다고 말한다. 경제화와 경쟁의 논리를 대학 교육에 대입하면서 공교육의 가치가 사라져 가고 있다며 안타까워한다. 실제로 볼로냐 프로세스의 추진 과정에서 각 대학들과 그 대학의 학과들은 가장 좋은 성과와 통계를 내기위해 서로 경쟁한다. 이 과정에서 학생들이 진정한 학문적 성취를 얼마나 이뤘느냐 혹은 어떤 가치를 생산해냈느냐는 계산에 포함되지 않고, 대학의 수익률과 취업률 또는 표면적인 수치 개선만이 평가 기준이 되어버리는 부작용이 발생한다. 

이와 더불어 볼로냐 프로세스의 효과는 미미하거나, 과장되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학문, 인적 간 유동성은 오히려 하락했거나 변화가 없음을 지적하는 조사결과와 논문들이 등장했다. (De zeil, 2007) 실제로 이 교육개혁을 적극적으로 추진했던 독일의 뮐러 미카엘(Muller-Michaels) 보쿰대학 명예교수는 “우리가 결코 이런 것을 원했던 것은 아니다”며 볼로냐 프로세스의 문제점을 인정했다. 경제 기업인들과 독일 교수협회들도 유동성이 실패한 것을 비판했다.  

볼로냐 프로세스와 더불어 여러 가지 신자유주의 교육 개혁이 일어나고 있는 것도 유심히 지켜봐야 할 지점이다. 실제로 2009년부터 지금까지 영국, 오스트리아,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 각국은 대학 등록금 상승과 함께 교육 분야에 정부 지원을 줄이는 정책을 발표했다. 이 결정에 대응해 대규모의 시위가 발생했음은 물론이고, 더 이상 볼로냐 프로세스 역시 그 본질을 의심받고 있다. EU의 신자유주의적 정책 일환에 불과하다는 불편한 시선이 바로 그것이다. 

실제 이전의 학생교류제(에라스무스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70% 학생이 영국, 독일 등 주요국의 소위 잘나가는 학과로 몰리고 있고 이들 대학은 뚜렷한 프로그램 개선 없이 등록금만 올리는 행태가 반복되고 있다고 지적받은 바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현상은 볼로냐 프로젝트 이후 더욱 강화되고 있다는 지적이 늘어나고 있다. 때문에 ‘경쟁력이 높아졌다는 실제 효과는 미비하며, 일부 대형 대학만 배부르게 하는 전형적인 신자유주의 정책이다’라는 목소리가 나날이 높아져가고 있다. 


볼로냐 프로세스가 한국에 시사하는 점


이처럼 볼로냐 프로세스를 관련된 논란은 ‘대학의 본질은 무엇인가? : 학문을 위한 장소인가 직업인 양성 공간인가’와 같은 이념의 문제를 수반한다. 동시에 ‘제도의 통일과 효율성 증가를 통해 강한 대학들의 숫자가 늘어난 것 아닌가 - 그러나 표준화를 통해 배제되는 대다수의 약한 대학은 어떻게 되는 것인가?’와 같은 경제적 논의를 포함하기도 한다. 더 나아가 공공성과 신자유주의의 싸움이라는 프레임이 조성되기도 한다. 여러 문제가 난해하게 얽혀있는 셈이다.  

대한민국 역시 반값 등록금, 국립대 법인화, 대학의 기업화 등 대학교육이 자본과 구조 개혁의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다. 더불어 우리가 추구하는 변화들 중 상당수가 유럽의 ‘신자유주의식 개혁’과 상당한 유사성이 존재한다. 실제로 그들이 지금 겪고 있는 문제는 몇 년 지나지 않아 우리 사회에서 주요 의제로 떠오를 가능성이 많다. 우리나라가 볼로냐 프로세스와 그를 둘러싼 논란에 주목해야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